한국사 자료
한국사 자료
한국사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측의 주장을 알아보고 그 주장의 오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한국사입문1
2. 본 론
1)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설정하는 논리의 출발점 :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중국학자들은 ‘중국은 자고 이래로 통일적 다민족국가였다’ 는 논리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중국은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통일적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민족의 역사, 나아가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범주로 설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각 시기별 역사주체의 계통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로지 현재의 영토만을 기준으로 과거 역사의 범주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 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과 더불어 변경지역(邊境地域)의 소수민족에 대한 통합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을 확립하였다. 이로써 전통사관에 따르면 중국사에서 제외될 무수한 소수민족의 역사라 현재 중국 영토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사로 둔갑하였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한 연구는 문화혁명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 문화혁명이 끝난 다음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특히 1980년대 전반 3차에 걸친 중국민족관계사 학술대회를 통해 일반화되었는데, 두영곤(杜榮坤) · 백취금(白翠琴) 등이 중국왕조에 주변 소수민족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중국은 2000여년 전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였기 때문에 주변 소수민족은 항상 중원왕조와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중국사의 일부를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족 상호간의 우호관계가 중국역사 발전의 주류(主流)이고 투쟁은 지류(支流)라면서 소수민족사 연구는 민족단결과 조국통일이라는 현 과제와 연계하여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추진배경과 현황
일찍이 고구려족을 중국 동북민족의 하나라면서 중화민족 성분의 일부로 설정하고 고구려를 중국 영토인 동북지역에 건립한 중국 국가로 파악하기도 했지만,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로 파악하는 견해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비로소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전반까지 중국에서 출판된 중국통사나 중국시대사에서는 거의 대부분 고구려사를 백제, 신라와 더불어 삼국의 하나로서 한국사로 설정하였을 뿐 아니라 수,당의 고구려 원정을 대외 침략전쟁으로 정의하였다. 그에 따라 고구려와 중국의 교류는 국제관계의 범주로 파악되었다.
또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보는 논자라 하더라도 평양 천도 이전에 국한시켜 중국사로 설정하였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중국 길림성 집안(吉林省 集安)과 요녕성 환인(遼寧省 桓仁) 일대에서 고구려 유적이 본격적으로 발굴되면서 중원문화의 영향이 부각되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도 고구려는 예맥족(濊貊族) 계통으로서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문화를 가졌으며 동이(東夷) 가운데 가장 강대한 민족이었다고 이해되었다.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120071&sid=sanghyun7776&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6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한국사
파일이름 : 한국사_2029988.hwp
키워드 : 한국사
자료No(pk) : 16120071
한국사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측의 주장을 알아보고 그 주장의 오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한국사입문1
2. 본 론
1)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설정하는 논리의 출발점 :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중국학자들은 ‘중국은 자고 이래로 통일적 다민족국가였다’ 는 논리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중국은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통일적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민족의 역사, 나아가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범주로 설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각 시기별 역사주체의 계통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로지 현재의 영토만을 기준으로 과거 역사의 범주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 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과 더불어 변경지역(邊境地域)의 소수민족에 대한 통합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을 확립하였다. 이로써 전통사관에 따르면 중국사에서 제외될 무수한 소수민족의 역사라 현재 중국 영토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사로 둔갑하였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한 연구는 문화혁명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 문화혁명이 끝난 다음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특히 1980년대 전반 3차에 걸친 중국민족관계사 학술대회를 통해 일반화되었는데, 두영곤(杜榮坤) · 백취금(白翠琴) 등이 중국왕조에 주변 소수민족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중국은 2000여년 전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였기 때문에 주변 소수민족은 항상 중원왕조와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중국사의 일부를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족 상호간의 우호관계가 중국역사 발전의 주류(主流)이고 투쟁은 지류(支流)라면서 소수민족사 연구는 민족단결과 조국통일이라는 현 과제와 연계하여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추진배경과 현황
일찍이 고구려족을 중국 동북민족의 하나라면서 중화민족 성분의 일부로 설정하고 고구려를 중국 영토인 동북지역에 건립한 중국 국가로 파악하기도 했지만,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로 파악하는 견해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비로소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전반까지 중국에서 출판된 중국통사나 중국시대사에서는 거의 대부분 고구려사를 백제, 신라와 더불어 삼국의 하나로서 한국사로 설정하였을 뿐 아니라 수,당의 고구려 원정을 대외 침략전쟁으로 정의하였다. 그에 따라 고구려와 중국의 교류는 국제관계의 범주로 파악되었다.
또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보는 논자라 하더라도 평양 천도 이전에 국한시켜 중국사로 설정하였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중국 길림성 집안(吉林省 集安)과 요녕성 환인(遼寧省 桓仁) 일대에서 고구려 유적이 본격적으로 발굴되면서 중원문화의 영향이 부각되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도 고구려는 예맥족(濊貊族) 계통으로서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문화를 가졌으며 동이(東夷) 가운데 가장 강대한 민족이었다고 이해되었다.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120071&sid=sanghyun7776&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6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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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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